제주 산방굴사, 붉게 저무는 노을과 산방덕이의 눈물이 머무는 풍경

구름 아래 산방산, 그 중턱의 신비로운 동굴

제주 서쪽을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산방산입니다. 봉긋하게 솟은 그 자태가 유난히 눈길을 끄는데, 산 중턱 150m 높이에 숨겨진 산방굴사를 향해 오르는 길은 제법 숨이 가쁩니다. 흙냄새와 짙은 초록의 내음이 섞인 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씩 내디디니 어느새 눈앞에 커다란 해식동굴이 나타납니다. 이곳이 바로 고려시대부터 고승들이 머물며 수행했다는 산방굴사입니다.

굴 안으로 들어서면 밖의 햇살과는 전혀 다른 서늘함이 온몸을 감쌉니다. 오래된 바위의 습기와 촛불 향이 섞여 묘한 평온함을 안겨주더군요. 지금 모셔진 석불좌상은 1985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사라졌다는 옛 불상을 대신해 자리 잡은 이 좌불이 어쩐지 더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혜일 스님이나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머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숨을 골라봅니다.

산방덕이의 슬픈 전설과 영원히 흐르는 눈물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면 바위 틈에서 물방울이 맺혀 똑, 똑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이를 '산방덕이의 눈물'이라 부르죠. 인간 세상에서 고성목이라는 이와 사랑에 빠졌으나, 권력자의 욕심으로 인해 결국 산방굴로 돌아와 바위가 되어버린 여신 산방덕이.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작은 샘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가 고요한 동굴을 채울 때면, 전설 속 이야기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현세의 고통과 비탄을 씻어내듯 쉬지 않고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마음속의 응어리 하나가 툭 하고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이런 깊은 서사가 담긴 장소에 올 때면 제주라는 섬의 속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느낌이 듭니다.

용머리 해안의 신비와 함께하는 제주 서쪽 여행

산방굴사에서 내려와 산방산 휴게소 인근을 거쳐 아래로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바다를 향해 머리를 내민 듯한 용머리 해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산방산의 독특한 종상화산 지형과 맞물려, 이곳의 지질층은 정말이지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파도가 깎아놓은 거대한 바위 절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형제섬,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아스라이 보이는 마라도의 실루엣은 제주 여행의 백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해 질 녘 방문을 추천합니다. 산방산 주위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산방굴사에서 내려다봤던 그 풍경과 용머리 해안의 거친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비로소 완벽한 제주의 하루가 완성되거든요. 화려한 카페 투어도 좋지만, 한 번쯤은 이런 유서 깊은 산사에서 제주가 간직한 옛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주소는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로 218-12, 제주 서쪽 여행 중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산방굴사는 올라가기 힘든가요?
산방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오르막길이 다소 가파른 편입니다. 편안한 운동화를 착용하고 여유롭게 천천히 오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주변에 함께 들를만한 곳은 어디인가요?
바로 아래 위치한 용머리 해안이 가장 유명하며, 산방산 주변의 유채꽃밭(계절별)이나 인근 사계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습니다.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오전의 맑은 공기를 느끼며 오르는 것도 좋지만, 해 질 녘에 방문하면 산방굴사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노을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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