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쪽 끝, 수월봉에서 마주한 붉은 노을의 위로

태고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절벽, 수월봉

제주도 여행을 하며 가장 마음이 머물렀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한경면 고산리의 수월봉이다. 버스에서 내려 고산리의 드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걷다 보면, 저 멀리 바다 끝에 야트막하게 솟은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높이 약 77m, 그리 높지 않은 이 봉우리가 왜 그리 특별한지 걷는 내내 궁금했다. 코끝을 스치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뺨을 간지럽히고, 귓가에는 파도가 깎아놓은 절벽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수월봉의 매력은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보다, 그 아래 펼쳐진 지층에 있었다. 억겁의 세월 동안 화산재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절벽은 마치 대자연이 써 내려간 한 편의 두꺼운 역사책 같았다. 가까이서 본 지층의 단면은 웅장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자연이 긴 시간 동안 정성스레 빚어낸 무늬를 보고 있자니, 나의 고민들이 참 사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차귀도가 품은 고요한 풍경과 수월정의 바람

봉우리 정상에 도착하면 육각정인 '수월정'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곳은 과거 비를 빌던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라고 한다. 잠시 수월정에 앉아 숨을 고르니, 바로 앞 바다에 떠 있는 차귀도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불리는 차귀도는 수월봉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짙푸른 바다 위로 그림처럼 떠 있는 섬을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거짓말처럼 차분해진다.

절벽 곳곳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또 어떤가. 척박한 땅에서 생명수처럼 솟아나는 그 물줄기를 보며, 예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 수월봉이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해 보았다. 인위적인 관광지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점이 이곳을 계속 찾게 만드는 이유 같다.

노을이 머무는 시간, 제주의 서쪽에서

수월봉을 방문한다면 무조건 '해 질 녘'을 노려야 한다. 제주도의 서쪽 끝이라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수월봉의 노을은 제주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따뜻하다. 수월정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면, 바다와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그 황홀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방문 팁을 하나 주자면, 수월봉은 바람이 상당히 강한 곳이다. 정상을 오르거나 해안 산책로를 걸을 때는 가벼운 바람막이를 꼭 챙기길 바란다. 주변으로는 신창풍차해안도로가 가까우니 함께 들러 드라이브를 즐기면 완벽한 제주 서쪽 여행 코스가 된다. 봄과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오후 4시쯤 도착해 천천히 지층을 구경하고 노을까지 보고 내려오는 여정을 가장 권하고 싶다. 너무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따뜻한 풍경이 그곳에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수월봉 가는 길은 어떻게 되나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760으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이동하시면 됩니다.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고산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20~30분 정도 소요되니 여유 있게 움직이시는 게 좋습니다.
수월봉 방문 시 가장 추천하는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해가 지기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전에 도착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월봉 정상 수월정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특히 유명합니다.
주변에 함께 가볼 만한 곳이 있나요?
차귀도 유람선 선착장이 바로 아래에 있어 배를 타고 섬 근처를 돌아볼 수 있으며,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신창풍차해안도로 역시 낙조가 아름다워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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